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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같은 믿음일까

지금 당장 기억나는 대로 써놓고 자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깨어 났을 때는 자는 동안 다 잊어버릴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꼭 쓰고 자려고 한다.

모든일에는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원래 준비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에 대해서 쓰려고 준비 중이었으나 상황의 시급함으로 인하여 이번 일기의 다음으로 잠시 미루려고 한다.

 

 이야기는 오늘 성현이와 있었던 담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평에서 만나 우리가 매일 가는 고기부폐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번에도 주제는 철학쪽으로 좀 기우는 듯 싶었다. 우리가 했었던 대화 내용을, 내가 녹음기도 아니고 내 기억력의 한계로 인하여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대한 요점만 집어서 서술 하려 한다.

 

 맨 처음의 화제는 성현이는 요즘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중" 이라고 하였다. 일단 이 생각에 대하여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1. 진정한 의미의 객관적인 시선이란 허상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하더라도 우리는 그 매체의 진보 혹은 보수적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된다. 사실 이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의 그 사실만을 보기는 어려울 뿐더러 적어도 자신이 그 사실을 들었을때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어느정도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2. 있는 사실 그 자체로만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성현이가 주장 하고자 하는 바는, 이 세상은 아무런 기준이란 것이 없기에 판단 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우리는 도덕이라는 것과 상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강제적인 규칙인 법도 있다. 전 우주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인간은 나름대로 사회속에서의 질서를 부여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성현이에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남의 가치관을 판단하게 되는 때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성현이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고 했지만 나는 즉석에서는 생각하지 못하여 이 주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토의가 오고 갔다. 지금 생각해본 바로는, 예를 들어 "첫인상" 이라는 것도 나는 상대방을 나름대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기품, 인성, 태도, 말투, 지식 등을 통하여 우리는 상대방을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첫인상" 이라고 표현한다.

 

두번째 주제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사실 쓰고 나서 보니 위의 2번과 겹치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성현이가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성현 : 사람은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해왔던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심판할 권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어느정도 선 까지는 동의 한다. 각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은 그 상태 그대로 고유 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예를 들어 이런건 어떨까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한비야라는 사람에 대하여 좀 알아보게 되었다. 이 사람에 대해서도 지금 쓰고 싶은 것이 좀 있지만 좀 참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한비야 7급" 이란느 검색어가 있었다. 무엇인고하니,

여러가지 청년들을 위한 강연회를 열던 한비야가 어떤 한 대학생이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대답하자 꿈이 그것밖에 안되냐며 때렸다는 것이다.

일단 이 사건만 보더라도 나의 입장은 한비야를 비난하는 입장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에 대한 공방이 있지만, 어쨋든 나의 의견은 그렇다. 한비야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보통 청년층의 고충을 그녀는 잘 모를 것이라고 본다. 그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무라며 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선에서는 나는 성현이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지금같이 나와 성현이가 평범한 대학생일 경우에는 서로의 가치관에 대하여 맞느니 틀리니 왈가부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여러가지 이익과 입장을 고려하며 일정 이상의 사회적인 지위를 쌓을 경우, 나는 각 개인이 타인에 대해 마음 속으로 내리는 판단이 불가피 할 것이라고 본다. 첫인상과 같은 개념이다. 언행, 말투, 품위 등 여러가지 모습을 보고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곤 한다. 이것은 심지어 연애 대상 혹은 결혼 대상을 고를 때도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일단 이 내용에 대하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기서 부터이다. 고기를 구워 먹는 도중 난 종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여기서 입장차가 분명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갈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나답게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더니 성현이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종교를 통하여 평화를 찾고 마음의 위안을 삼기 때문에 종교는 괜찮다는 입장을 펼쳤다.(물론 그렇다고 성현이가 종교를 옹호하거나 종교적인 성향, otherworldly 한 성향을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확실한 세속주의자임에는 틀림 없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난 후에 다시 보면, 사실상 논의는 여기서 끝난 것임에 다름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어떻게 들렸을 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나 : 종교는 사람들에게 거짓된 교리를 진실이라고 가르치며 자칭 성스럽다고 불리는 기독경을 곧이 곧대로 믿게 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사회적인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종교(일단 대표적인게 기독교이니 기독교라고 가정하겠다.)의 부정적인 면을 해석하는 경향이 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강조한 것은 역사적으로 크게보면 사회적으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진 많은 탄압과 과학에 대한 멸시, 교회의 권력화, 도덕적 진보의 방해가 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고 작게 보면 국소적인 부분들, 일부 목사들의 파렴치한 행위, 일부 기독교인들의 비상식적인 신앙심으로 일어나는 폐단, "신" 이라는 근거없고 비이성적인 존재에게 기대는 유아적인 사고방식등 이런 것을 비판 한느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현이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종교가 미치는 폐단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성현이는 종교가 현대인들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이다. 즉 우리는 동일한 대상을 보면서 정 반대로 생각 한 것이다.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 이라는 존재가 실재적이지 않은 것이든 혹은 비이성적인 것이든 간에 힘들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종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를 거칠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의 힘든 시기를 겪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힘들때 종교에 기댄다고 해서 내가 종교를 비난 하는 것은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것은 인정 한다. 종교의 영향력이 오직 개인에게만 국한되어 사회적인 폐단으로 나타나지만 않는 다면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겠다. 그러나 현실은 종교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크게 갖고 있다. 나는 이래서 문제를 삼는 것이다.

일단 성현이는 사람들이 "신"을 생각 할때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상정 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신을 가정하여 믿는 거라고 봤다. 그리고 성경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으며 그 중 좋은 구절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다는 것이다. 몰지각한 행동은 일부 삐뚤어진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행동이지 그것은 전체가 아니라며 반박하자 나는 다시 이렇게 반박했다. 바로 그것이 종교의 참 모습이라고. 종교가 정말로 절대적이며 신성불가침한 영역이 아니라 종교를 이루는 조직, 즉 교회도 사회적인 조직에 불과하다고 다시 반박하였다. 여기서도 드러나지만 나는 종교라는 것에 대하여 폐단을 보고 있지만 성현이는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다는 것에 유의하자.

 이제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보기에 종교는 인류의 생각과 사고의 진보를 거의 항상 방해하는 존재였다. 나는 중세 시대를 예를 들었는데 중세 시대에는 종교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며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몰상식한 행동들에 대하여 말하자 성현이는 그건 그때의 상황이라고 반박, 그러자 나는 지금과 같이 과학이 발전하고 종교의 세력이 약화 된 것은 자유사상가들이 끊임 없이 종교를 공격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것은 종교의 권력을 공격 한 것이지 종교 자체를 공격 한 것은 아니라고 일축. 이야기의 빠른 전개를 위해, 사회적인 문제를 보면 어쨋든 성현이는 종교의 사회적인 폐단은 적다고 판단하고 나는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야기는 종교vs과학에 까지 흘러가게 된다. 성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 대신에 과학을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자 나는 솔찍히 좀 발끈 했다. 내 상식으로는 과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은 학문체계 일뿐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일 뿐이다. 과학을 어떻게

"믿지" H2O를 믿어야 하나? CH4를 믿나? 아니면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고 기도를 올려야 하나? 난 과학을 절대로 믿음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과학은 인간이 자연계에 있으면서 자연을 탐구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동반자이다. 난 과학자들의 학문적 순수함을 믿기 때문에(여기서의 믿는다는 것도 초월적인 존재를 향한 믿음이라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과학은 절대로 자신이 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과학이론은 언제든지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는 졀대 불변의 진실이 아니다. 학자들간의 Scientific skeptic은 서로의 이론에 대하여 검증을 요구하며 공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봤을때 더욱 견고한 이론의 발전을 향한 믿거름이 될 뿐이다. 난 과학을 단지 신뢰할 뿐이다. 인류의 동반자로써.

 하지만 성현이는 종교와 비교를 하며 다르게 말하며 다시 반박한다. 나는 종교에 대하여 안좋게 보는 면이 있지만 성현이는 과학을 안좋게 보는 면이 있나보다. 비록 과학고를 나오긴 했지만. 과학은 인류를 스스로를 자멸 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바로 핵전쟁과 현대전. 이것은 과학이 만든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자 또 다시 나는 그것은 과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지 과학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성현이는 종교인들이 자신만의 신을 믿듯이 나도 과학이라는 신을 믿는거라며... 믿는다, 믿는다라.  우리가 서로 믿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과연 같은 뜻의 "믿는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대충 정리해 보려 한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그래도 나름 의미는 있었다고 본다. 그래도 이런 정말로 진지하고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친구를 둔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비록 의견은 다르더라도 말이다.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다시 한 번 느낀것은,

사람은 자신이 보고 느낀것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가치관을 구축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종교의 결점을 주로 봐왔고 성현이는 종교도 나름 대로 안식을 줄 수 있다면 괜찮다고 본 거겠지. 그래도 서로 감정이 상할 정도는 아니게 토론 한 것이라서 좋았다. 결과적으로 서로 기분 상하지는 않았다.

 

느낀 것이 많았다. 내가 앞으로 생각해봐야 할것은 무궁무진 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글쎄, 정답이 없다라는 것은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진리는 정답에 가까운 답은 있어도 절대적으로 옳은 답은 없다는 것이 가장 진실에 부합될 것이다. 내가 토론을 하는데 있어서의 자세, 그리고 지식의 깊이,

다른 사람과의 의견 공유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자리 였다. 시간이 늦어 대충 마무리 하지만 수정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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